에바 파 1차 감상 소감은 한마디로 "충격과 공포와 카오스." 특히 저 '카오스'가 너무 커서 머릿속이 아직도 뒤죽박죽이다. 음. 도저히 한 줄기로 맥이 안 잡히는데... 한 번 생각나는 대로 따라가볼까.
일단 오프닝부터 등장해주시는 여섯번째 파일럿, 무려 마야 씨의 마리! 생각 이상으로 박력 있고 강하고 어딘가 나사가 삐뚤어진 데도 보이는 여자애라 "오호?" 흥미가 동했다. 은근히 시키('공의 경계')가 연상되기도 하고. 근데 쭉 보니까 기대보다 등장이 적어서 약간 아쉬웠음. 물론 적은 등장횟수를 만회할 만큼의 임팩트도 보여줬지만. "내 목적을 위해 어른들을 이용하다니, 찝찝하구만." 이라고 뭔가 숨겨진 꿍꿍이가 있는 말을 하기도 하고 에바에 대해서도 다른 파일럿 애들보다 좀 더 아는 게 많은 것 같아서, 앞으로의 활약이 무척 기대된다. 그리고 마야 씨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기대 이상//ㅅ// 잇힝. 정말 이상형이라니까.
그리고 그 프롤로그에서부터 영화 내내 종종 등장하는 전투씬- 아. 애니라서 더 효과가 극대화되었는지도 모르지만, '트랜스포머 따위' 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만큼 박력이 넘쳤다. 기술력이 향상된 만큼 업그레이드 된 CG와 동화. 사도들의 디자인도 좀 더 세련되면서 정교해졌고, 에바들의 움직임은 이미 2차원의 수준을 넘어선 듯이 관객을 압도한다. 떨어져내리는 사도를 받아내려 초호기가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가는 장면은 정말이지...... 아스카의 성격 덕에 본래도 움직임이 많았던 2호기도 화려한 액션이 빛을 발했고. 마리의 '짐승 같은' 액션이야 뭐...... 무서울 지경. 이런 곤조 퀄리티...... 대체 뭘 만든 거야.
음악 연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음... 음......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기존 에바 이미지와는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졌고, 그게 어울리는 부분도 있는가 하면...... 음...... 특정 장면들에서 '그런 노래'를 삽입한 건 정말 제대로 '에바 센스' 같으면서도 뭔가 아스트랄했달까.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 언밸런스함이라니. 그치만 제일 타격이 큰 건 역시 '그 엔딩' 뒤에 이어지는 'Beautiful World'겠지. 이런 악취미;ㅁ;!!!
그치만 뭐니뭐니해도 역시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신지, 아스카, 레이, 그리고 겐도. 영화 보기 전에 본 리뷰에서 '눈물 날 정도로 인간적'으로 변했다고 했는데, 보고 나니까 정말 그 말이 맞았다. 특히 세 아이들. 애니나 구 극장판에서 봤던 얘들은 이미 꿈도 희망도 없는 듯이, 마음의 조개 껍질을 꾹 닫아걸고 그 속에서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서'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파'에서의 얘들은 분명히 태도가 다르다. 각자 나름의 상처, 불안, 두려움, 결핍감, 아픔을 안고 있는 건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이 애들은 시도를 해본다.
먼저 신지. 마르고 가냘픈 그림체 때문에 더 위태위태하게 보이던, 늘 귀를 닫고 소통의 두려움을 피해 달아나려 하던 이 소년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서보려고 하는 모습은 꽤나 "아..." 하고 가슴이 움직이는 느낌이 있었다. 어쩌면 레이 한정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나중에 아스카에 대해 하는 걸 봐도 음, 한정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열혈'이 되었다는 평도 있고 몇몇 부분을 보면 확실히 그런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도 그게 훨씬 바람직해 보이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지금의 신지는 훨씬 더 다정하고, 또 강단도 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향해서 밀고 나아갈 만큼의 의지를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 그것이 분노이든 애착이든. "레이를 되찾겠어!"라니, 이 녀석...... 사랑의 힘은 위대하구나.
그런 신지로 인해 레이가 보여주는 변화도 상상 이상. 자기가 받고 있는 따스함을 알고, 또 자신도 그런 느낌을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전의 레이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점. 심지어 그걸 직접 행동으로 옮길 만큼 지금의 레이는 적극적이다. 여전히 남들 앞에서 자신을 크게 내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견이나 나름의 주장을 표시할 만큼의 고집과 의지력도 생긴 것 같다. "난 인형이 아니야."라니, 얼마나 속시원한 말이야. 물론 최고의 임팩트는 "신지가 더 이상 에바에 타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 거야." 였지만.
그리고 신지 → 레이에 이어서 아스카와 겐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나 홀로 완벽하면 된다고, 남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던 아스카는 협동작전에서의 작은 실패 경험과 레이에 대한 경쟁심으로 고뇌하다가, 마침내 조금쯤은 다른 사람을 의지해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털어놓고. 철석 같은 표정과 목적을 향한 독단으로 무장했던 겐도는 레이와 신지를 보며 구 극장판 맨 끝에서야 열렸던 내면의 감정 - 유이를 향한 그리움을 조금씩 엿보여준다. 모션이 크지는 않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랄까. 초호기로 돌아와서 "아버지!"라고 외치는 신지에 움찔하는 것은 진짜 "오." 싶었다. 세심하군요, 가이낙스.
앞사람들만큼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미사토도 좀 더 신지에게 솔직해진 것 같고.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같은 눈높이에서, 감정을 공유하면서, 진지하게 대해주는 것 같았다. 음. 좋아, 좋아. 지켜보는 입장에서 훨씬 마음이 편해졌는걸.
그리고 아이들의 그런 변화에서부터 줄거리도 변한 것 같다. 초반까지는 음, 그래도 '보완'이라고 생각했다. 신지의 태도를 조금 바꾸고, 몇몇 캐릭터의 등장 방법을 바꾸고, 따로/함께였던 사건들을 합치고/나눠서 배치를 바꾸는 정도로...... 그러나 그것들이 쌓이고 나니 중반쯤부터는 명백히 '파괴'가 되었다. 일단 신지에게서 촉발된 레이의 변화가 상당히 파장이 크고, 아스카가 조금 솔직해진 순간 일어나는 제 9사도 침략부터는 분명히 얘기가 달라졌다. 아스카가 누군가의 역할을 대체하고, 그 뒤 아스카의 역할을 마리가 대체하게 되니까. 랄까 3호기 사도에 아스카가 들어가다니!! 안돼!! 신지의 충격이 배가 되잖아!!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가면 그 '파괴'는 절정에 이른다. '최강의 방패'를 지니고 본부로 쳐들어오는 사도 앞에 네르프 대 위기. 그에 제일 먼저 나서는 파일럿은 바로 마리. 개인적으로는 여자캐릭터가 이렇게 '짐승 같이' 싸울 수 있다는 건 다소 신선한 충격이었다만... 그 '짐승'도 상대가 안 되니까 레이가 '죽을 각오'로 달려들고, 진짜 죽을 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그래, 뭐, 사도 둘이 합쳐진 것 같기는 하지만 여기까진 그래도 따라가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드디어 신지가 기합을 잔뜩 넣고 돌아와서 사도를 물리치고 위기의 레이를 기어이 '구해낸다.'...... "뭐? 구했어?!" 구했다. "아야나미 레이는 하나 뿐이야! 레이! 내 손을 잡아!" 이런 대사를 외쳐가며. 오 아버지... 그러나 이어지는 초호기의 변화를 보면 진짜 비명도 안 나오게 된다. "잠깐, 초호기, 스톱! 이거 4부작이라며! 벌써 '진심' 분위기가 나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래, 이런 소리가 나올 만큼 기존 전개를 싹 갈아엎어버렸으니 기존 전개를 기억하고 있던 내 머릿속이 테러를 안 당하겠냐고ㅇ>-<
덧붙여 스탭롤 지나간 뒤 나오는 Q 예고편도...... 진심으로 오그라들 뻔 했다. "이번에야말로 너만은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라니, 뭐 임마?!! 근데 이 자식 사내녀석이 여자보다 뒷태가 더 섹시해도 되는 거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러가지로 충격과 공포와 카오스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보니 '파'에서 에반게리온은 역설적으로 좀 더 친절해진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분명해졌다고 할까. 사람과 사람의 단절과 소외, 마음의 벽을 뛰어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가 고통스럽도록 처절하게 그려졌던 지난날과 달리, 파는 소통과 교류의 힘, 그로 인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바로 기존의 에반게리온의 틀을 파괴함으로써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본 가장 의미있는 '파괴'는- 여기 있는 아이들은 살아있고, 살려고 하고 있다. 자기만의 자궁에 틀어박혀서 썩어버리는 게 아니라 서로 손을 내밀고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세상에 대해 쌓아올렸던 자신의 껍질을 부수는 거야말로 이 이야기에서 희망을 찾을 길이 아닐지. 파가 워낙 파격이라서 Q에서 도대체 어떻게 진행될 지 감도 안 잡히지만, 음....... 최소한 '진심을 너에게'와는 다른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예고편에 나오는 아스카 표정도 조금 희망을 보태주는 것 같고...... 그리고 신지의 공식 커플링이 여기서 확정되는가 아니면 뭔가 다른 게 있는가도 좀(...)
쨌든 최종 결론 = "DVD!!!!"(...) 후우. 상영 끝나기 전에 한번쯤 더 보러 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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